역사
바이킹의 殉葬 모습
no1tv
2010. 10. 9. 10:51
바이킹의 殉葬 모습
'죽음의 천사'가 여인의 목을 끈으로 맨다. 두 남자가 끈을 당겨 질식시키는 순간
'죽음의 천사'는 굵은 칼로 여인의 갈비뼈 사이를 여러 번 찌른다.
이들의 殉葬풍습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는 이븐 파들란이라는 아랍인이다. 그는 992년 볼가江邊(강변)에서 목격한 러시아 부족장의 장례식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러시아는 스웨덴 바이킹이 슬라브族을 정복하여 그 기초를 놓은 나라이다. 러시아란 말은 '루스'라는 스웨덴 말에서 나왔다.
한 바이킹 部族長이 죽자 가족이 남녀 노예들(아마도 슬라브族이었을 것이다)을 모아놓고 "누가 따라 죽을래?"라고 묻는다. 한 여자 노예가 殉葬을 자원한다. 그때부터 다른 노예들은 이 여자를 감시한다. 생각이 바뀌어도 봐주지 않는다. 장례식까지 매일 여인을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다. 좋은 일을 기다리는 듯하다.
장례식 날, 사람들은 배를 강변에 끌어올려놓는다. '죽음의 천사'란 별명을 가진 비대한 여자가 장례식을 주재한다. 땅에 묻어두었던 부족장의 屍身(시신)을 다시 꺼내와 옷을 입힌다. 배에는 천막을 치고 그 안으로 屍身을 가져가 安置(안치)한다. 마치 산 사람을 대하듯 먹을 것과 입을 것을 屍身 옆에 쌓아둔다.
사람들은 개와 닭을 잡아 고기를 배로 던진다. 따라 죽게 되어 있는 여인은 여기 저기 쳐진 천막을 돌아다니면서 부족장의 부하들(家長)과 性交를 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이야기하라. 주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서 이렇게 한다고"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여인을 배로 데리고 간다. 여인은 목걸이를 벗어 '죽음의 천사'에게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방패를 들고 와서 여인을 에워싼다. 여인에게 술을 먹인다. 여인은 노래를 부른다. 통역자는 아랍인 이븐 파들란에게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방패를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여인의 비명을 구경꾼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섯 명의 남자가 배에 올라탄다. 여기서 또 여인과 性交를 한다. 여인을 부족장 屍身 옆에 눕힌다. 남자들이, 여인의 두 팔과 다리를 붙든다. '죽음의 천사'가 여인의 목을 끈으로 맨다. 두 남자가 끈을 당겨 질식시키는 순간 '죽음의 천사'는 굵은 칼로 여인의 갈비뼈 사이를 여러 번 찌른다. 부족장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 와서 배에 불을 지른다. 사람들이 차례로 불쏘시개를 배에 던진다. 배가 불길에 휩싸인다.
이런 식의 殉葬이 사라진 것은 11세기 초 바이킹들 사이에 기독교가 확산되면서이다. 노예제도도 사라졌다. 기독교에 의한 文明化가 시작된 것이다. 16세기 초 바이킹 3國은 루터의 종교개혁에 맨 먼저 편승, 改新敎(루터교)로 改宗, 유럽 新敎세력의 보루가 된다. 17세기 전반의 30년 종교전쟁 때 독일의 新敎徒를 구원한 것은 (프랑스의 후원을 받은) 스웨덴軍과 덴마크軍이었다.
趙甲濟
[조갑제닷컴 www.chogabje.com 2010.10.8]